소설에 무한한 진원의 공급을 가능하게 한다. 특히 천민들에게 유가적 이념을 구현시켜 지주계층을 풍자하는 진구로 삼았던 것이다. 김인수, 「마장전 연구 : 윤리의식을 중심으로」, 인하대 교육대학원 석사논문, 2000, pp.25~35.
10) 열녀함양박씨전
연상각선본에 실린 열녀함양박씨전은 개가 금지
소설의 자료를 정리하고 그 변이 과정을 살핌으로써, 그것이 우리소설사에서 차지하는 의미를 탐색하려는 것이다.
필사본이나 방각본과 구별하여 특히 활자본 고소설을 다루는 이유는 그것이 근대문학 전환기인 1910년대에 등장하여 가장 널리 읽혔기 때문이다. 고소설이 가장 널리 읽혔다는 근거는
사회적인 감각이 아니라 기성적이고 공적인 선험으로 일관되고 말았다. 소월, 안서, 유암 등이 『태서문예신보』 1918년 9월에 창간된 우리나라 최초의 주간지. 1919년 2월 종간.
등에 발표한 시에서 보여준 개성적인 서정의 발견은 새로운 감정이지만, 그 리듬은 순전히 내발적인 것이 아니라, 서구시와
고려 문학의 주류는 (한문학)에 있었다. (과거) 제도의 실시와 중국 문물의 수입으로 한문학이 융성했기 때문이다.
향가의 전통은 균여대사의 (보연십원가)를 거쳐 예종의 (도이장가)에 이어졌으나, 한문학의 발달로 한문을 자유자재로 구사하게 되자 향가계 문학은 사라지게 되었다. 반면 한자에 의한
조선 후기는 신분제사회가 존재기반을 잃으면서 서민문화가 전면적으로 활성화되던 시기였다 경제구조의 변동과 새로운 사상의 유입 등은 서민의식의 성장을 가져왔고 서민문화의 전성기를 이룰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잡가는 서민문화가 활성화되어 가던 19세기에 신분적으로는 하층민에 속